
건축은 단지 공간을 설계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 움직임,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담아내는 하나의 언어다. 이러한 건축적 요소들은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이야기의 정서와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핵심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일부 명작 드라마들은 건축미와 공간 구성, 조명과 색채를 통해 캐릭터의 심리와 사회적 구조를 드러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글에서는 넷플릭스에 숨어 있는 드라마 4편을 선정하여, 그 안에서 사용된 건축적 요소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시각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했으며, 각 드라마가 전달하는 공간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1. 《마르세유 Marseille》 – 고전 정치 건축의 상징성
《마르세유》는 프랑스 최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프랑스 남부 항구 도시 마르세유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정치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도시의 정치적 긴장감과 권력 구조를 도시 건축과 역사적 공간으로 표현해낸다.
특히 구청사, 광장, 성당과 같은 고전 유럽식 건축물은 권력의 상징이자, 세대 간 정치 갈등의 무대가 된다. 중후하고 웅장한 석조건축물은 시대의 유산이자 인물의 무게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높은 천장과 긴 복도는 권력의 거리감과 권위주의적 구조를 암시하며, 시청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로 권력 게임을 관망하게 만든다.
2. 《다크 Dark》 – 공간 구조와 시간의 건축적 해석
독일 드라마 《다크》는 단순히 미스터리나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물리적 공간으로 시각화하는 방식에서 놀라운 건축적 접근을 보여준다.
동굴, 고립된 숲속 집, 학교 건물, 원자력 발전소 등은 모두 독립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동일한 시간축 위의 건축물들이 연결되어 있다. 구조적 중첩, 좌우대칭, 폐쇄성과 개방성 등 건축적 개념을 시간 서사에 녹여낸다. 이 드라마는 서사의 구조 자체를 공간적으로 설계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3. 《갓리스 Godless》 – 서부 개척 시대의 도시 계획과 여성의 공간
《갓리스》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 한 광산 마을에 남성들이 모두 사라지고 여성들만 살아가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 드라마의 건축적 특징은 계획되지 않은 도시 공간의 현실적 묘사와, 성 역할에 따라 재정의되는 공간의 의미다.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이었던 술집, 마굿간, 광산 등이 여성들의 새로운 거점 공간으로 바뀌며, 건축물의 사용 방식 자체가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재구성된다. 이는 건축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용도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의 확장과 전환을 담는 그릇임을 보여준다.
4. 《만달로리안 The Mandalorian》 – 미래 건축의 시각적 실험
《만달로리안》은 디즈니+ 오리지널이지만 일부 지역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되며, SF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전통 건축의 재해석이 뛰어난 작품이다.
각 행성의 거주지는 고대 중동 지역의 진흙 벽돌 건축을 기반으로 디자인되었으며, 돔형 지붕과 아치형 통로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는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달한 세계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아날로그적 공간에서 안정을 찾고자 한다는 건축적 은유로 해석된다. 또한 촬영에 사용된 LED 볼륨 스튜디오는 디지털 공간과 물리적 구조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건축과 기술의 경계를 허문다.
마무리
넷플릭스 드라마는 단순히 이야기만으로 평가하기엔 아까운 시각적, 공간적 가치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건축적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면, 그 안에 숨겨진 서사와 캐릭터의 내면, 그리고 시대적 메시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오늘 소개한 4편의 드라마는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간의 설계와 건축미를 통해 깊은 해석이 가능한 숨겨진 명작들이다. 드라마 속 건축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의 구조이며, 감정의 흐름이며, 시대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