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시간을 항상 직선으로 이해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하나의 방향. 하지만 영화는 자주 그 선을 휘게 만들고, 끊었다가 다시 잇고, 때로는 거꾸로 흐르게도 한다. 왜일까? 그것은 인간의 감정이 직선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제나 점프하고, 후회는 과거로 돌아가고, 희망은 미래를 앞당긴다. 영화는 그 감정의 리듬에 따라 시간을 새롭게 배열하며, 직선의 시간 안에 담기지 않는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 글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전통적으로 따르지 않는 네 편의 영화를 통해, 영화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지를 감성적으로 분석해본다.
1. 어바웃 타임 – 반복되는 하루, 쌓여가는 감정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은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감정을 이야기한 영화다. 주인공 팀은 21살이 되던 해, 남자 일가에게 시간여행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사랑을 고백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다시 누리며 삶을 조율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반복 자체가 아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감정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설정은 결국, 지금 이 순간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팀은 점점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하루를 충실히 살기로 결심하고, 그 순간부터 시간이 더 이상 특별할 필요 없이, 의미 있게 바뀐다.
어바웃 타임은 직선의 시간을 반복이라는 고리로 끌어당기며, 삶의 감정을 더욱 촘촘하게 만든다.
2. 메멘토 – 거꾸로 흐르는 기억, 조각난 시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 (Memento, 2000)는 시간의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은 구조를 가진 영화다. 주인공 레너드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고자 하지만, 단기 기억 상실증을 앓고 있어 기억을 10분 이상 유지하지 못한다.
영화는 두 개의 시간 축을 보여준다. 하나는 흑백 장면으로 직선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며, 다른 하나는 컬러 장면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거꾸로 되돌아간다. 관객은 이 두 흐름을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듯 진실에 접근하게 되지만, 결국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기억이 없을 때, 우리는 진실을 믿을 수 있는가?”
메멘토는 시간을 뒤집음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해 살아가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3. 어톤먼트 – 편집된 과거, 거짓된 구원
어톤먼트 (Atonement, 2007)는 시간이라는 흐름 안에서 거짓말과 후회가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답고 슬픈 영화다.
어린 시절 브라이오니는 자매 세실리아와 하급 계층 청년 로비 사이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로비를 범죄자로 몰아간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생이별하게 되고, 브라이오니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영화의 말미, 노년이 된 브라이오니는 작가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다르게' 끝낸다. 그녀는 책을 통해 둘이 재회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관객은 그 해피엔딩이 현실이 아닌, 죄책감의 보상 심리였음을 알게 된다.
어톤먼트는 시간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그 시간 자체가 픽션이었음을 밝힌다. 시간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과 죄의식에 의해 편집되는 것</strong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4. 트리 오브 라이프 – 시간의 시작과 끝,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구성하지 않는 대표적인 철학적 영화다.
영화는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중년 남성의 고뇌에서 시작되지만, 곧 우주의 탄생, 공룡의 등장,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죽음 이후의 환상으로 전개된다. 하나의 인생을 시간순으로 따라가기보다는, 모든 시간의 단면이 겹쳐져 있는 감정의 파편</strong으로 풀어낸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성인의 슬픔을 말하고, 우주의 태동이 인간의 고독과 연결된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시간을 수직으로 배열하지 않고, 마치 시간의 강을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한꺼번에 바라본다.
이 영화는 가장 비서사적인 방식으로, 시간과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시적으로 보여준다.
결론 – 시간은 감정의 구조다
우리는 시간을 시계로 재고, 달력으로 계획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상처는 10년이 지나도 생생하고, 어떤 하루는 10년처럼 길다. 영화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감독들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반복시키고, 왜곡시키며 감정을 더 정확하게, 더 깊이 있게 전한다. 어바웃 타임은 하루의 반복 속에서 감정을 배웠고, 메멘토는 기억 없이 시간을 역주행했으며, 어톤먼트는 시간을 편집하여 용서를 구했고, 트리 오브 라이프는 모든 시간의 감정을 한 장면에 담아냈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감정은 곡선을 그리고, 영화는 그 곡선을 따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시간이 아니라 감정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