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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속 건축의 부재 – 집이 사라진 시대의 공간 철학

by wowpong 2025. 11. 11.

노매드랜드 한 장면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2020)」는 단순한 로드무비가 아니다. 이 작품은 ‘집’이라는 개념이 해체된 시대, 건축이 없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감독 클로이 자오는 경제적 붕괴 이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여성이 자신의 밴을 집 삼아 떠도는 삶을 통해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글에서는 노매드랜드 속 ‘이동식 공간’과 ‘건축의 부재’를 중심으로, 현대 건축의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1. 집의 해체 – 고정된 건축에서 이동의 건축으로

노매드랜드의 세계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집’이 없다. 주인공 펀은 도시를 떠나 자신의 밴에서 생활하며, 주유소와 캠핑장, 도로와 사막을 오간다. 그녀의 삶은 정착을 거부하고, 이동을 기반으로 한 건축적 실험이다. 건축이 원래 인간의 보호를 위해 생겨났다면, 노매드랜드는 그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 영화에서 건축은 ‘머무름의 구조’가 아니라, ‘이동의 구조’로 재해석된다.

건축학적으로 이는 ‘노마딕 아키텍처(Nomadic Architecture)’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동식 주거, 모듈형 구조, 재조립 가능한 공간 등은 고정된 벽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준다. 펀의 밴은 작고 불완전하지만, 그 안에는 침대, 조리대, 수납장 등 모든 생활 구조가 축소되어 있다. 이것은 미니멀리즘의 극단이자, 건축의 본질이 ‘크기’가 아니라 ‘기능’에 있음을 보여준다.

2. 밴이라는 공간 – 건축의 최소 단위

펀의 밴은 집이자 자동차, 그리고 감정의 공간이다. 그 내부는 개인의 역사와 기억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물리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건축 구조다. 건축적으로 보면 밴은 ‘모바일 하우스(mobile house)’이자, ‘건축의 원자(atom of architecture)’다. 공간은 고정되지 않고, 언제든지 이동하며 재구성된다.

밴 내부의 디자인은 흥미롭다. 벽 대신 천이, 바닥 대신 철판이, 문 대신 커튼이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건축의 불완전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자유의 구조’를 표현한다. 펀은 좁은 공간 안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공간에는 설계자의 의도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이 배어 있다. 이는 건축가가 아닌 인간 자신이 ‘공간의 설계자’가 되는 순간이다.

3. 공간과 자유 – 고정되지 않은 삶의 미학

노매드랜드에서 건축의 부재는 곧 자유의 시작이다. 고정된 집은 편안함을 주지만, 동시에 구속을 만든다. 펀은 그 벽을 버림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건축의 본질이 ‘머무름’이라면, 그녀의 건축은 ‘흐름’이다. 이것은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집은 거주의 기계다”라는 정의를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한 것이다.

펀의 여정은 건축의 경계를 해체한다. 도로 위의 주차장, 사막의 텐트, 해질녘의 밴—모든 곳이 그녀의 집이 된다. 이것은 “공간은 사용되는 방식에 따라 건축이 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고정된 건물이 없더라도, 인간이 머무르는 순간 그곳은 건축이 된다. 노매드랜드는 ‘공간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건축 철학의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4. 자연과 건축의 재결합 – 외부가 내부가 되는 삶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펀이 밤하늘 아래 밴 문을 열고, 별빛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 문은 벽이자 창문, 내부와 외부의 경계다. 이 장면은 건축적 의미에서 ‘경계의 해체’를 상징한다. 펀의 집에는 문과 창문이 있지만, 그것들은 자연을 차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이 건축의 일부로 흡수된다.

건축학적으로 보면, 이는 안도 다다오가 추구한 “자연과의 대화”의 극단적인 형태다. 노매드랜드의 공간은 완전한 개방을 지향하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하늘이 천장이 되고, 모래가 바닥이 되며, 바람이 벽이 된다. 이것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원시 건축(Primitive Architecture)’의 회귀이자, 인간과 공간의 관계가 다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5.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노매드랜드 – ‘없음’의 건축

노매드랜드를 건축적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부재의 건축(Architecture of Absence)’이다. 이 영화에는 설계자도, 도면도, 영구적인 구조물도 없다. 하지만 그 ‘없음’ 속에 인간의 존재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펀의 삶은 ‘기억으로 지어진 건축’이다. 그녀의 밴은 과거의 관계와 추억, 상실의 흔적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건축은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다. 펀은 물리적 벽을 버렸지만, 정서적 벽을 새롭게 쌓는다. 그녀의 건축은 외형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으로 완성된다. 노매드랜드는 우리에게 ‘건축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철학적 진실을 일깨운다. 건축의 형태가 사라질수록, 인간의 존재는 더 또렷해진다.

6. 결론 – 집이 없는 시대의 건축, 인간이 공간이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건축이 사라진 시대의 건축학이다. 이 영화는 벽도, 기둥도, 천장도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건축이 사라졌다고 해서 공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자신이 공간이 된다. 펀의 여정은 ‘공간이 인간을 담는 시대’에서 ‘인간이 공간을 만드는 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결국 노매드랜드는 건축의 해체가 아니라, 건축의 확장이다. 건축은 더 이상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 기억, 감정의 총체로 존재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사는 집은 당신의 자유를 담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을 가두고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노매드랜드가 남긴 가장 건축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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