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 2017)」는 스웨덴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의 대표작으로, 현대 사회의 위선과 도덕적 무감각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예술계의 도덕적 위선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중심에는 ‘건축적 공간’이 존재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전시의 이름인 ‘더 스퀘어(The Square)’는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와 관계, 그리고 사회적 공존의 경계를 실험하는 건축적 장치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미술관과 광장을 중심으로 건축적 관점에서 공간이 어떻게 도덕, 신뢰, 권력의 구조를 드러내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1. ‘더 스퀘어’ – 윤리의 경계를 만든 공간
영화의 핵심은 바로 미술관 앞에 설치된 ‘더 스퀘어’라는 작품이다. 지름 4미터의 정사각형 공간은 “이곳에 들어선 사람은 서로를 신뢰하고 보호해야 한다”라는 문구와 함께 제시된다. 이 작은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단순한 형태지만, 윤리적·사회적 의미로는 거대한 건축적 선언이다. 이 정사각형은 하나의 ‘건축적 장치’로, 경계와 내부를 구분함으로써 인간의 도덕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를 묻는다.
건축적으로 볼 때, ‘더 스퀘어’는 ‘경계의 건축(boundary architecture)’이다. 공간은 단순히 비어 있지만, 그 비어 있음이 바로 윤리적 공간을 창조한다. 루이스 칸이 “건축은 빛과 침묵이 만나는 곳”이라고 했듯, 이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사람의 시선과 행동을 규정짓는 ‘보이지 않는 벽’을 형성한다. 관객은 이 정사각형을 보며 ‘이 안에 들어가야 할까?’라는 윤리적 선택을 스스로 하게 된다.
2. 미술관의 건축 – 권력과 신뢰의 구조
영화 속 미술관은 유리와 금속,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현대적 공간이다. 그 구조는 개방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을 불편하게 만든다. 넓은 로비, 높은 천장, 매끄러운 표면은 마치 권력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이곳의 건축은 ‘열린 척하지만 통제된 공간’이다. 감독은 이 미술관을 통해 현대 사회의 투명성과 감시의 역설을 드러낸다.
건축적으로 미술관은 ‘투명한 감옥’이다. 유리는 개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외부와 내부의 긴장을 강화시킨다. 사람들은 서로를 볼 수 있지만, 결코 다가서지 못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인간 관계를 상징하며, ‘공공성의 실패’를 건축적으로 표현한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말했듯, “현대의 투명 건축은 감시의 미학을 숨기고 있다.” 더 스퀘어의 미술관은 바로 그런 역설의 구조다.
3. 공공 공간과 사적 경계 – 도시의 무관심을 설계하다
영화에서 미술관 바깥의 광장은 또 다른 핵심 공간이다. 이 광장은 시민들이 오가며 지나치는 일상의 장소이지만, ‘더 스퀘어’가 설치된 순간부터 공간의 의미가 바뀐다. 그곳은 ‘공공의 책임’을 실험하는 장소가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그 사각형을 대부분 외면한다. 이는 도시 건축이 만들어낸 ‘무관심의 미학’이다.
건축에서 공공 공간은 사람들을 연결해야 하지만, 현대 도시의 광장은 오히려 분리와 무관심을 확산시킨다. ‘더 스퀘어’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선택을 요구하지만, 대부분은 그 공간을 지나친다. 이 장면은 건축적 상징으로 볼 때, ‘공공성의 실패’이자 ‘공간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도시는 외형적으로는 개방적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닫혀 있다.
4. 건축 재료와 색채의 상징 – 투명성과 고립의 대비
미술관 내부는 차갑고 인공적인 재료로 구성되어 있다. 유리, 철, 콘크리트가 주를 이루며, 색채는 흰색과 회색 중심이다. 이는 이성적이지만 비인간적인 사회 구조를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반면, 미술관 외부의 광장은 따뜻한 색감과 자연광으로 채워져 있다. 이 대비는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구조의 긴장을 보여준다.
건축에서 색채는 감정의 언어다. 미술관의 흰색은 순수함을 가장하지만, 사실상 권력의 표면적 정당성을 의미한다. 광장의 따뜻한 색감은 인간적인 공감을 상징하지만, 현실에서는 무력하다. 결국 루벤 외스틀룬드는 색채와 재료의 대비를 통해, ‘도덕적 공간’이 얼마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5.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더 스퀘어 – 공간의 책임
건축가의 관점에서 보면, 더 스퀘어는 ‘윤리적 건축’의 실험이다. 이 공간은 형태나 기능이 아닌, ‘의미’를 설계한 구조물이다. 인간이 서로를 신뢰하고 보호하는 윤리적 행위를 공간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결국 공간은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되어도, 인간의 도덕성이 결여되면 기능을 잃는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건축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장치다. 건축가가 윤리를 설계할 수 있을까? ‘더 스퀘어’는 그 질문에 대한 도발적인 실험이며, 관객에게 도덕적 참여를 요구하는 건축적 선언이다.
6. 결론 – 건축은 도덕의 형태를 설계한다
영화 「더 스퀘어」는 건축이 단순히 형태나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와 관계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정사각형의 단순한 공간 안에서 인간의 위선, 무관심, 책임이 모두 드러난다. 공간은 비어 있지만, 그 비어 있음 속에서 인간의 도덕이 시험된다. 이 영화는 결국 ‘공간이 인간을 만든다’는 건축의 근본 명제를 시각적으로 증명한 작품이다.
건축은 언제나 인간의 행위를 전제한다. ‘더 스퀘어’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이 공간 안에 들어선다면, 정말로 타인을 보호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영화가 남긴 가장 건축적인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