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름의 햇살과 사랑을 그려낸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를 넘어, 공간이 인물의 감정선에 깊이 관여하는 독특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마(Crema)에 위치한 그 고풍스러운 저택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는 하나의 유기적인 ‘건축적 서사’로 작용한다. 본 글에서는 영화 속 이탈리아 저택의 실제 위치, 건축 양식, 그리고 공간 구성 방식이 영화 서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건축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살펴본다. 이 공간은 왜 그렇게도 많은 관객의 기억에 남았을까?
1. 실존 공간: 이탈리아 ‘Villa Albergoni’
영화 속 주 무대가 되는 고택은 실제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크레마(Crema) 인근에 위치한 ‘빌라 알베르고니(Villa Albergoni)’라는 17세기 고택이다.
이 저택은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지어진 전형적인 이탈리아 ‘컨트리 하우스’ 형태로, 당시 귀족이나 중상류층 지주 계급이 여름을 보내던 공간이다.
- 건축 양식: 이탈리아 바로크 전환기
- 특징: 균형 잡힌 파사드, 높은 층고, 격자창, 원목 가구 등 시대성 보존
2. 공간 구성과 영화 속 연출 방식
이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인 대사보다 공간과 자연의 변화를 통해 드러낸다.
빌라 내부의 구조 또한 매우 영화적으로 활용되었다.
- 건물 내부 구조: 중앙 홀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형, 닫힌 듯 열려 있는 구조
- 외부 공간: 복숭아나무 농장, 연못, 돌길, 포르티코 등이 계절의 흐름과 감정의 리듬을 함께 만듦
3. 건축이 만들어낸 감정의 리듬
빌라 알베르고니는 단지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반영하는 감정의 공간적 투영체다.
특히 내부의 어두운 서재와 밝은 거실, 계단실 등은 심리적 거리감과 감정의 경계선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엘리오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방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장면은 ‘창문’이라는 경계 공간을 통해 그 감정의 복잡함을 표현한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마치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처럼,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빛과 어둠, 닫힘과 열림이 공존하는 건축적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4. 영화와 건축의 미장센 연결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건축을 단지 ‘장소’가 아닌, 서사의 한 인물처럼 다룬다.
그는 실제로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영화 외에도 「아이 엠 러브」, 「서스피리아」 등에서 공간 활용이 탁월하다.
그의 연출 철학은 다음과 같다:
- “공간은 인물의 감정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 빛과 그림자, 색감, 질감을 통해 인물의 심리적 여정을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이 빌라 알베르고니를 단순한 세트가 아닌, 하나의 '숨 쉬는 건축적 존재'로 만들어낸 것이다.
5.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이 공간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이 공간은 건축 보존과 현대적 해석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유지하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품은 벽체와 낡은 타일, 노후된 가구들은 ‘감정의 진정성’을 전달한다.
또한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는 지속가능한 건축이라는 방향성을 생각하게 한다.
즉, 단절이 아닌 연결, 장식이 아닌 기능, 시간성 있는 공간을 추구하는 건축 철학이 녹아 있다.
결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저택은 단순히 예쁜 영화 배경이 아니다.
그곳은 시대와 계절, 감정과 시간이 공존하는 유기적인 건축 공간이며, 감정의 굴곡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서사 장치다.
이처럼 영화 속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관객에게 새로운 감상의 층위를 제공하며, 공간이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건축적 사유를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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